루이비통 꽃비빔밥, 구찌 버거…"이제 먹는 것도 패션"

입력 2022-06-09 16:58   수정 2022-06-17 18:21


지난 4월 26일 오후 6시. 실시간 레스토랑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에 접속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국내 최초로 오픈한 팝업 레스토랑 ‘피에르 상 앳 루이비통’ 예약을 위해서였다. 이날은 5월 4일부터 6월 10일까지 38일간 매일 운영하는 점심 코스(낮 12시~오후 2시30분)와 티 코스(오후 3시~5시30분), 디너 코스(오후 6시30분~9시30분)의 사전 예약을 받았다. 전 좌석 예약 마감에 걸린 시간은 단 5분. 예약창이 열리기 1시간 전부터 접속해 수십 명의 대기자 중 한 명으로 ‘빈자리 알림신청’을 해놓은 뒤에야 겨우 예약에 성공했다. 점심 13만원, 디너 23만원, 티 세트 8만원의 가격. 이 화제의 팝업 레스토랑이 문을 닫기 하루 전날, ‘마지막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올 들어 미식가들의 허기를 자극한 두 개의 팝업 레스토랑을 비교 분석했다. 세계적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 구찌. ‘피에르 상 앳 루이비통’은 10일까지 운영해 더 이상 맛볼 수 없지만 ‘구찌 오스테리아’는 매달 30일에 한 달 뒤 예약을 받아 종료 시점을 두지 않고 당분간 운영한다.
미식의 시작은 눈으로부터-특별했던 공간들
모든 미식의 시작은 눈이다. 코와 입을 자극하기 전 먼저 시각으로 전달된 아름다움에 뇌세포가 움직인다. 루이비통의 팝업 레스토랑은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 메종 4층에 자리 잡았다. 루이비통은 일본 등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레스토랑을 연 것은 한국이 처음. 현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이 건물 안은 한국적 곡선을 적용해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천장 가득 샹들리에처럼 달아놓은 1만3899개의 모노그램 꽃송이가 손님을 맞았다. 대리석 상판의 테이블, 구릿빛 벽이 루이비통의 상징인 모노그램 로고를 더 반짝이게 했다. 한국과 프랑스를 연결한다는 의미로 한쪽 벽면엔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의 작품이 걸려 있어 미술관에서 식사하는 것 같은 상상을 자극한다.

이태원 구찌 가옥 6층에 자리한 구찌 오스테리아는 구찌의 상징적 컬러인 그린을 주로 썼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인테리어와 녹색 식물들이 더해지며 유럽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를 자아냈다. 테이블웨어와 냅킨 하나하나에도 구찌의 앤티크 감성이 묻어나는 게 인상적이다. 구찌 오스테리아는 2018년 1월 이탈리아 피렌체의 ‘구찌 가든’ 1호점을 시작으로, 2020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힐스와 2021년 10월 일본 도쿄 긴자에 이어 네 번째로 서울을 택했다.
구찌 버거 vs 루이비통 비빔밥-시그니처 메뉴는?

명품 브랜드 두 곳은 미쉐린 3스타 셰프를 내세워 ‘창의력 대결’을 벌였다. 구찌 오스테리아를 이끄는 마시모 보투라 셰프는 독특한 재료의 조합과 독보적 조리법, 뛰어난 상상력으로 사소한 재료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다. 전통 이탈리안 요리에 유머와 창의성을 더해 완전히 새로운 미식 경험을 선보인다. 시그니처 메뉴인 ‘에밀리아 버거’는 셰프의 고향인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의 이름에서 따왔다. 패티는 치아니나 고기와 코텍리노 소시지로 만든 뒤 파마지아노 레지아노, 그린 소스, 파슬리, 앤초비, 카퍼, 발사믹 식초 등으로 맛을 냈다. 분명 미국식 버거의 맛을 기대했는데 이탈리안 식재료의 황홀한 풍미가 넘쳐흘렀다.

루이비통 레스토랑의 디너는 디저트를 포함해 총 8코스. 피에르 상 보이에는 프랑스 파리에 비빔밥 열풍을 불어넣은 주인공이자 현지에서 레스토랑 5개를 운영하는 외식 사업가다. 한국계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을 담아 모든 코스에 한국 식재료를 썼다. 그의 시그니처 요리는 ‘PS비빔밥’. 그가 식당을 처음 시작할 때 점심 메뉴로 넣은 것도 비빔밥이다. 꽃 모양으로 펼쳐지는 까만색 일회용 종이 상자에 음식을 담아내는데 비빔밥은 각종 식용 꽃으로 장식했다. 고추장의 강렬한 맛은 없지만 톡톡 씹히는 채소의 식감이 재밌다.

보이에의 코스에는 한국식 식재료가 두루 쓰였다. 6시간 이상 절인 아스파라거스는 한국의 절임 방식을 적용한 전채 요리. 한우 등심 스테이크(립아이)에는 양송이로 만든 파이와 쌈장 소스, 명이나물을 곁들였다. 파이의 아삭함이 알싸한 쌈장 소스와 더해져 다채로운 맛을 냈다. ‘랍스터 라비올리’는 이탈리아식 얇은 만두인 라비올리를 거품을 머금은 랍스타 소스가 이불처럼 감싸고 있었고, 잘 구워진 대파의 단맛이 조화가 좋았다. 제주와 남해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생선 ‘달고기’와 춘장 맛이 나는 김치볶음은 환상의 조합을 이뤄냈다.
명품과 손잡은 3스타 셰프, 왜
이 둘은 모두 자신의 레스토랑을 통해 세계인을 만나고 있는 정상급 셰프다. 이 셰프들을 서울로 오게 한 이유는 명품의 철학과 요리의 철학이 맞닿아 있어서다. 보투라 셰프는 “구찌가 패션에 접근하는 방식과 내가 요리에 접근하는 방식이 같다”고 말한다. 과거를 향수로 추억하기보다 비판적 시각으로 장점을 이끌어내 미래로 나아간다는 것. 오랜 전통 위에 쌓아 올린 새로운 비전과 열정이 서로 닮아 구찌 오스테리아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됐다는 얘기다. 보투라 셰프는 각 도시에 레스토랑을 낼 때마다 그 지역의 오랜 역사를 녹여낸 메뉴를 만들어 화제를 모은다. 서울에선 제철 허브와 채소, 식용 꽃 등을 활용한 ‘서울가든’을 내놨다. 그는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을 방문한 모두가 작은 나비 장식 하나에서도 특별한 기분을 느끼고 갔으면 한다”고도 했다.

보이에 셰프는 한국에 대한 특별한 개인사가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일곱 살 때 프랑스로 입양 갔는데 당시 서류에 적힌 한국 이름은 김상만이었다. 프랑스 양부모님은 그를 위해 이름에 한국 이름 ‘상만’ 두 글자를 넣어주려 했지만, 담당 공무원 실수로 이름에 ‘만’이 빠지며 ‘피에르 상 보이에’가 됐다. 루이비통이 협업 제안을 했을 당시 “서울에서 한국 최고의 식재료로 프랑스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며 바로 좋다고 대답했다고. 대담하고도 실험적인 요리를 해온 셰프들에게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손잡는다는 것은 ‘미식의 확장’이자 ‘세계를 연결하는 실험’이었던 셈이다.

김보라/배정철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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